인간은 낯선 공포보다, 익숙한 일상 속의 공포에 더 쉽게 무너진다.
‘이웃사람’(2012)은 그걸 알고 있다.
평범한 얼굴들 틈에, 말 없이 살인을 저지른 이가 있었다.
아주 가까운 이웃 중 한 사람이,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이 더 오래도록 서늘하다.
강풀 원작의 동명 웹툰이 가진 현실감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공포는 자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 침묵’에서 만들어진다.
그 침묵은, 언젠가부터 범죄의 일부처럼 스며들었다.
‘이웃사람’은 첫 번째 살인 이후, 계속되는 연쇄살인을 막기 위해
이웃들이 침묵을 깨고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범인의 정체를 관객에게만 초반에 드러내며,
이웃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풀어가는 구조다.
딱히 소란도 없고, 이사 가는 사람도 없다.
소녀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범인이 사는 건물에는 여러 세대가 뒤엉켜 있다.
어떤 이는 그저 살아가기 바빴고, 또 다른 이는 의심하면서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모른 척, 외면했던 시간들이 결국 비극으로 돌아왔다.
사건보다 오래 남는 건,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묘한 정적이다.
영화는 피해자 주변 인물들의 감정선을 천천히 따라간다.
처음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사람들,
하지만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결국 마주하게 된다.
‘이웃’이란 단어는 그렇게 위태로운 이름이 된다.
김윤진이 연기한 피해자 어머니는 분노와 절망 사이에서 조금씩 무너져간다.
그녀의 얼굴엔 상처보다, 외면당했다는 감정이 더 깊게 남아 있다.
마주치면 웃고, 인사도 하던 이웃들 속에서
딸은 죽음으로 사라졌고, 누구도 끝까지 제대로 보지 않았다.
이 영화가 남기는 공포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 정적에서 비롯된다.
반면 김성균이 연기한 범인은 놀랄 만큼 일상적이다.
피해자와 나란히 앉아 피자를 나눠 먹고는,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른다.
별다른 기이함 없이, 말수 적고, 예의 바른 그.
그래서 더 섬뜩하다.
그가 사라졌다고 해서, 이 동네가 안전해졌다고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이웃사람’은 자극보다, 조용히 스며든 관계의 균열에 더 오래 시선을 둔다.
범죄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은, ‘아무 일 없던 일상’을 계속 반복하게 만드는 무기력일지도 모른다.